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왕국(얼음과 불의 노래) (문단 편집) === 법 === 한때 자치권 보장을 위해 따로 지역마다 다른 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재해리스 1세]] 치세에 통일된 법전을 편찬했다. 하지만 [[도르네]]는 합병된 뒤 예외가 되었고 절대적 맏이 상속법 등의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법의 집행권은 각각의 영주에게 주어져 있으며 자기 영토의 치안을 유지하고 상소를 받아들이며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영주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건 국왕령의 영주이기도 한 왕도 마찬가지인데, 1부의 산사 파트를 보면 조프리가 단순 절도사건조차 직접 재판한다.[* 밑도 끝도 없이, 증거도 증인도 정황도 따지지 않고 피고가 나오자 마자 손목을 자르라고 하는 막장 재판이었지만, 어쨌든 제대로 일을 하려 든다면 매우 바쁠 것이다. 문제는 조프리가 이때만 재판을 하며 업무를 보았지 이후로는 업무를 소홀히 하며 향락에만 빠져들었던 것.] 때에 따라서 조언자를 두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소협의회]]에 법무대신이 있지만 직접 재판을 맡는 일은 거의 없고 대신 자문 및 감독을 담당한다. 법적으로 남녀 모두 16살이 성인이다. 보통 칠신교에서 정의를 담당하는 아버지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재판에는 피고와 증인이 진실을 맹세한다. 특정 상황에 따라 피고가 [[결투 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전사를 선택해 1대 1이나 7대 7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원고와 피고, 혹은 그 대리인이 무기를 들고 싸워서 이기는 쪽이 무죄, 지는 쪽이 유죄. 강한 자가 옳다가 아니라 신께서 옳은 자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개념이다. 국왕 시해 혐의로 유죄가 거의 확정돼가던 티리온의 결투 재판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을 보면 결투 재판은 피고가 요구하면 거진 받아들여지는듯. 참고로 국왕에게는 범죄자를 사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처형은 일반적으로는 참수형이나 교수형이며, 살인이나 반역죄 등 중죄를 저질렀을때 처해진다. 하지만 작중에서 참수형과 교수형보다 더 잔혹한 형벌들이 국왕과 귀족들에 의해 흔하게 시행되고 있다. 여담으로 북부에서는 선고인이 직접 처형을 집행하는 관습이 있으며, 칠왕국의 왕은 개인 처형인을 따로 보유하고 있다. 덜한 범죄의 경우 감옥에 가둬지거나 태형, 신체절단형[* 실제로 중세 유럽에선 절도범을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게 많았다. 1765년에 즉위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오스트리아의 공동 통치자인 [[요제프 2세]]는 많은 개혁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중에는 신체절단형 금지가 있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중세가 끝난 18세기 중반이 지날 때까지도 유럽에서 신체절단형이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등에 처해지기도 한다. 강간범의 경우엔 밤의 경비대로 추방되거나 아니면 거세당하고 교수형이나 차뭇형에 처해진다. 감옥에 가두는 수감형도 있지만 장기간 가두지는 않는다. 높은 벌금을 내고 형벌을 면제할 수도 있으며, 때에 따라서 남자는 다른 형벌 대신 [[밤의 경비대]]로, 여자는 [[침묵의 자매들|침묵 수녀회]]로 [[유배]]되는 것을 택할 수도 있다. 밤의 경비대로 가면 두번 다시는 돌아올수가 없으며 탈영할 경우 사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종교의 영향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매춘이 합법이다. 권장되지는 않고 금지하려는 시도도 여러번 있었지만 일단은 허용되고 있다. 이건 실제 중세 유럽도 흔히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킹스 랜딩은 세관 수입 중 하나가 사창가인 [[공창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